[인문학의 뜰] 여름의 끝

미실란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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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성장의 계절, 여름 큰바람에 작물 스러지지만 서로 의지하며 이겨내기도 열매맺기 전 내 삶 살피고 원하는 결실 미리 내다보면 다가올 모든 계절 애틋할 것



여름의 끝엔 큰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남해안의 작은 항구 진해에서 자란 나는 큰바람 소식이 들리면, 일부러 방파제로 나갔다. 아직 바람이 닿기 전 먼저 항구로 들어오는 것은 배들이었다. 평소엔 스무척 내외의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그 저녁엔 이백척이 훨씬 넘는 배들이 방파제 안으로 들어와선 배와 배를 이었다.

큰바람이 남해안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곤 새벽부터 텃밭에 나가 작물을 살폈다. 내가 사는 전남 곡성 근처까지 올라오려면 아직 세시간 남짓 여유가 있다. 어젯밤부터 비는 일찌감치 내리기 시작했다. 장화를 신고 옥수수들부터 흙을 북돋아줬다. 고구마와 호박은 낮고 넓게 퍼져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지만, 장마와 함께 키가 쑥 자란 옥수수는 단단히 지켜야 한다.

섬진강 들녘으로 나오니, 벼들이 춤추듯 흔들린다. 벌써 이삭이 팬 조생종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큰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벼들이 누운 논과 눕지 않은 논이 확연히 갈릴 것이다. 뿌리가 얼마나 깊게 내려갔는가 하는 것과 뿌리들끼리 얼마나 서로 흙과 함께 엉켰는가 하는 것이 생사를 가른다. 굳건하게 이어진 배들이 풍랑을 이기듯, 뿌리들끼리 뒤섞여 버티는 벼가 비바람을 견뎌내는 것이다.


큰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더위도 한풀 꺾이리라. 대낮의 뙤약볕은 여전히 뜨겁지만, 아침저녁엔 선선한 기운이 농부들의 발목과 손목을 감싼다. 지난여름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들녘의 벼와 옥수수, 고구마와 콩이 자라난 여름이기도 하고 농부가 살아온 인생에서 겪은 여름이기도 하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을 때 농부는 열매까지 거둘 기대를 한다. 그러나 봄에 싹을 틔웠다고 모두 가을의 결실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생기거나 병이 들어 열매를 맺기도 전에 스러지기도 한다. 그 계절이 대부분 여름이어서 더 답답하고 더 안타깝다.

올여름에도 함께 들녘에서 일하고 논두렁을 걷고 더운밥을 나눠 먹었던 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두번째 가을이나 세번째 가을도 그리움에 젖겠지만, 첫번째 가을은 손끝까지 시리다. 떠난 이들이 봄에 심었던 작물을 남은 이들이 가을에 수확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여름이 상실의 계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작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풀도 함께 자란다. 더 빨리 더 많이 성장하는 길만이 유일해서일까. 그러나 여름처럼 자라는 것은 여름뿐이다. 겨울과 여름은 천양지차다. 또한 뿌리의 성장과 줄기의 성장과 가지의 성장과 잎의 성장을 모두 살펴야 비로소 한 식물의 성장이 보인다. 특정 부위가 웃자라 약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며 밖이 아니라 안을 보는 여름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될 것이다. 여름이 끝났다고 느끼기 전부터 가을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올가을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여름을 이어가고, 어디서부터 여름과 선을 그을 것인가. 그것은 결국 끝과 시작을 논하는 이야기다. 상실도 성장도 아닌 방식으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았으면 싶다.

연말이나 연초에 생의 마디를 찾아 매듭을 짓고 정리하거나 시작하는 글을 쓰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 글을 여름의 끝에 써보기를! 여름을 둘러싼 사람과 동식물과 사물을 당신이 고른 단어와 문장으로 품기를! 아직 열매를 맺기 전,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되살피고, 내가 원하는 열매는 과연 무엇인가를 내다본다면, 가을과 겨울과 봄 그리고 다시 맞을 여름도 더 애틋하고 풍요로울 것이다. 결과로 원인을 찾지 않아야 길 위의 다채로운 변주도 가능하다. 모험이기도 하고 기적이기도 하겠다.

김탁환 소설가


원문 : https://www.nongmin.com/article/2023081650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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